우리 조선(구. 다나카 조선소 자리)
근대 조선산업 1번지 대평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목선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1887년 일본인 조선사업자인 ‘다나카 와카타로(田中若太郞)’는 현재 영도 대평초등학교 자리에 목선을 만드는 ‘다나카 조선소’를 설립했고, 대풍포가 일대가 매축된 후 현재 위치로 옮겼습니다.
다나카 조선소를 대한민국 근대 조선산업의 발상지로 보는 이유는 바람이나 증기로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 아닌 엔진으로 동력을 얻는 선박을 최초로 개발하고 보급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1918년 선박용 엔진 개발에 착수해 1925년 중유발동기(重油發動機) 개발에 성공, 1926년부터 30마력과 50마력 발동기를 생산해 전국에 판매하고 1920년대 말에는 화물선 건조를 시작합니다. 1931년부터 1940년대에는 일제의 전시계획조선에 참가해 1943년 조선총독부 체신국으로부터 엔진을 장착한 300톤급 목철교조기선(木鐵交造汽船) 건조 조선소로 지정받아 대륙 침략과 수탈을 위한 선박을 건조했다고 합니다.

다나카 조선소 자리는 <대양조선철공>, <구일조선>, <남양조선>, <유진조선>, <에스엔케이조선>으로 사업자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가 현재는 <우리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다나카 조선소를 비롯해 대평동에 있던 조선소를 불하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체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깡깡이마을을 7~80년대 수리조선업의 메카로 성장시켰습니다.

참고_김재근(일정시대의 조선업, 1987) / 배석만(1930년~50년대 조선공업 정책과 조선회사의 경영, 2005)